김진아 감독은 전작 ‘동두천(Bloodless)’으로 2017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Best VR Story 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동두천(Bloodless)’에 이어 미군 기지촌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3부작 중 두번째 이야기 ‘소요산(Tearless)’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비욘드 리얼리티 (Beyond Reality) 섹션에 초청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출품과 상영을 위해 부천을 찾아주신 김진아 감독님(이하 G)과 작품과 제작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시리즈가 어떻게 기획이 되었는지, 그리고 가능하시다면 다음 에피소드에 대한 계획도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G: <동두천(Bloodless)>은 1992년에 일어났던 ‘윤금이 살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현재도 존재하고 있는 동두천 기지촌에서 찍은 작품입니다. <소요산(Tearless)> 같은 경우는 한국 정부가 미군 기지촌 여성에게 성병검사를 실시해서 낙검된 분들, 아니면 성병에 이미 걸려있다고 추정되는 분들까지 같이 수용하고 강제 치료를 했던 수용소 ‘몽키 하우스’에 대한 작품이고, 그게 소요산 등산로 입구에 있어요. 그래서 제목이 <소요산>이 된 거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두 작품 다 장소성과 그 장소에 갇혀있는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계속 이야기가 연계되다 보니까 세 번째 작품 배경 역시, 아주 자세히 지금 다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전국에 있는 한 기지촌의 어떤 장소가 될 거예요. 그 장소 안에서 일어났던 일과 그 일을 감내해 내야 했던 여성의 몸이 드러나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리고 아마 세 번째 작품은 제 작품 중에서 가장 비주얼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두천(Bloodless)> 촬영하실 때만 해도 아직 VR 제작 기술 수준이 많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어떤 계기로 VR이라는 매체를 접했으며, 직접 VR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까?
G: 저는 이 질문을 받으면 약간 부끄러운 게, 제가 어쩌다 보니 무슨 첨단 기술, 첨단 미디어를 굉장히 잘 아는 사람처럼 이야기가 되어버렸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냥 VR 계열에서는 좀 조롱하듯이 부르는 ‘flat cinema’라는 평평한 보통 영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VR 국제 포럼 <가상현실 영화에 뛰어들다>’에서 모더레이터를 맡게 되어서 공부를 엄청나게 했죠. 매체에 대해서 나름 깊이 공부를 하고 그 때 나온 최신 논문들을 다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새로운 매체로 윤금이 사건을 이야기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 사건을 어떻게 영화 매체로 이야기를 다시 할 수 있을까를 굉장히 오랜 시간(거의 25년이죠)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고 매번 재현의 윤리라는 한계에 부딪혀서 프로젝트를 버려야했어요. 그런데 VR이라는 매체를 공부하면서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두기 없이 체험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대상의 착취가 없는 공감’이 가능해질 거라는 점을 알아차리게 되었죠. 그러면서 이제 ‘이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이 이야기를 VR로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내용이 훨씬 먼저 나오고 형식이 이를 따라가는 형태로 VR을 접하게 되었고, VR 작품을 만들게 된 거죠.
VR이라는 매체를 굉장히 잘 사용하셨다는 생각을 합니다. 보통 우리가 VR 콘텐츠를 얘기할 때 가지고 있는 컨셉은 되게 심플해요. 카메라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관객이 거기에 있다. 그러니까 관객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것을 같이 체험하게 되는 거다. 그렇지만 그게 잘 구현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카메라를 갖다 놓았다 하더라도 관객들이 거부감 또는 이질감을 느끼거나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지?’ 혹은 ‘내가 이거를 보고 있는 게 맞는가? 내가 뭔가 인터렉션을 하고 있는가?’ 이런 고민을 하게끔 만들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단순한 컨셉이 매체의 강렬한 가능성을 저해하기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G: 맞아요, 맞습니다.
<동두천(Bloodless)>과 <소요산(Tearless)>은 그 부분을 극복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구상하셨던 것들이 실제로 잘 구현이 되었는지, 혹은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G: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스러웠어요. 제가 VR 작품을 계속해 온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VR’에 대해 어렴풋하게 상상했었죠. 그런데 막상 접해보니까 2D 영화를 하던 사람이 뛰어들기에는 너무나 다른 매체라는 걸 금방 알게 되었어요. 다행스러웠던 건 제가 미술을 전공하면서 비디오/미디어아트, 퍼포먼스, 설치작업을 통해 ‘매체는 그냥 툴, 도구일 뿐이다’라는 걸 자연스럽고 편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야기에 맞는 도구를 찾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VR이 ‘360 ° 영화’라는 생각을 버리고 나니까 오히려 처음 든 생각은, 제가 대학 다닐 때는 실험 연극도 많이 했었는데, ‘이게 사실은 연극과 비슷한 거구나, 관객이 중앙에 있고 배우들이나 사물들이 어느 구석에서 튀어나올 지 모르는, 관객이나 감독이 컨트롤할 수 없는 연극이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새로운 세상이 열리더라고요.
처음에는 촬영 감독님하고 로케이션을 갈 때 ‘이걸 찍었으니까 이제 저것도 찍죠’ 그러면 ‘방금 찍으셨는데요?’ 그러시더라구요. ‘아, 이건 360° 카메라지!’ 이런 식으로 적응이 잘 안되었습니다. 이거는 정말 감독이 샷플로우(Shot flow)를 할 수 없고 편집을 할 수가 없어서 클로즈업도 할 수가 없구나. 기존의 영화 제작 방식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여기 저기를 촬영하고 각 샷을 붙여가며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는 게 영화의 비민주성이잖아요. 그런데 VR은 그게 아니라는 거를 깨닫고 나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감독이 그런 능력을 다 잃어버리고, 관객이 자기가 보는 것을 어느 정도는 콘트롤 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나자 그것을 역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두천(Bloodless)>을 만들 때는 관객이 어디를 보는지 감독이 컨트롤을 할 수 없다는 게 굉장히 재미있었고 그렇다면 그것을 아주 극대화하자고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처음엔 여자가 등장했다는 걸 놓치는 사람도 매우 많아요. 그게 맞는 거고. 그러다가 관객을 점점 좁은 골목으로 몰아가면서 결국은 맞닥뜨리게 만드는 과정을 굉장히 섬세하게 연출을 한 거죠, 영화 연출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런 것들이 굉장히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좀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리긴 했지만.
VR의 특징을 역이용한 점이 그 당시 많이 만들어졌던 VR 영화들 사이에서 <동두천(Bloodless)>이 어떤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VR 매체는 보이지 않는 어떤 세계를 보여 주거나 관객이 갈 수 없는 세계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지에 가서 찍은 것들도 많고, 바닷속이나 우주와 같은 테마들로 만들어진 작품도 많습니다.
그런데 <동두천(Bloodless)>과 <소요산(Tearless)>는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 되게 무심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윤금이 사건’ 같은 경우는 되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고, 아직도 그것이 치유되거나 화해되거나 극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전체적인 상영 시간은 짧잖아요. 짧은 러닝 타임 안에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런데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되게 많은 것들이 채워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VR이라는 매체를 다루면서 보여주는 것을 이렇게 무심하게 내려놓기가 감독님으로서 되게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런 역설이 제목에도 다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두천(Bloodless)>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피를 보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제목은 ‘피가 없는(Bloodless)’이라고 지으시고, <소요산(Tearless)>은 거의 눈물 속에 잠겨있는데 ‘눈물이 없는(Tearless)’으로 하셨습니다. 그런 연출 지점을 잡아내신 것이 이 작품들의 성공 요인이 아닐까 생각이 들거든요. 이 작품을 이런 식으로 연출해야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시게 되셨을까요.
G: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동두천(Bloodless)> 같은 경우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내용이 정말 먼저였어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윤금이 사건을 접했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굉장히 어린 나이였구요. 이 사건에 항의하고 저항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민족주의자분들도 있었고 반미운동을 하시는 인권변호사들도 있었고, 여성단체 등 여러분들이 참여를 하셨습니다. 저희야 뭐 그냥 대학생이었구요.
그런데 저희한테 내려온 어떤 지침이나 포스터나 찌라시라고 불렸던 플라이어(flyer)에 보면, 그걸 받는 순간 저희는 너무 충격에 빠졌는데, 윤금이씨의 사체 사진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사체의 사진이 저희가 뿌려야만 했던 전단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모든 매체에 굉장히 크게 나왔고, 지금도 사실은 인터넷에 돌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그게 저를 너무나 강렬하게 분노하게 했고, 전단에 인쇄되어 있었던 ‘양키고홈’이라던가 굉장히 어설픈 영어로 썼던 여러 문구가 저의 마음에 마치 낙인같이 뭔가를 찍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 저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었습니다. 후기 식민지 사회에 사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강렬하게 각인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동시에 이 사태를 수습하고 싶었어요. 그 어린 마음에도 사진들을 다 주워 담아서 이 이미지를 영원히 유통되지 않게 없애고 싶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제대로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윤금이 씨가 잃어버린 인권, 특히 ‘이미지의 인권’을 되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렬하게 들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때는 없었죠.
이 이야기를 어떻게든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영화감독이 된 이후에도 많이 했는데 매번 같은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루고 싶지만, 피해자(의 이미지)를 착취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은 없었어요. 사건의 현장을 이야기하고 보여줘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을 피해 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게 상업 영화에서 사실상 가능한 일이 아니어서, 매번 한계에 부딪혀서 포기했었죠. 그러다 VR이라는 매체를 만났을 때 딱 키워드처럼 떠오른 말이 ‘몸의 부재(the absence of the body)’였거든요. 그 사건의 현장에 사체가 없게 하고 싶다는 생각, 사체는 없지만 대신 살해의 흔적이 남아있다면 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강렬하게 들었어요. 그러니까 ‘보여주지 않음’이 처음부터 키워드였던 거에요.
<소요산(Tearless)>도 마찬가지입니다. ‘몽키 하우스’에서 여자들이 굉장히 처참한 일을 당했죠. 증언집 같은 것을 보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거를 어떻게 하면 안 보여주고 사람들이 느끼게 할 수 있을까가 저한테는 언제나 핵심이었어요. 왜냐하면 보여주는 순간 그 자체로 이 여성들에게 다시 한번 폭력을 가하는 일이 되는 것이고, 이미지를 착취하는 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가 하려던 방향과 정반대의 결과를 결국은 만들어내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일반 2D 상업 영화에서 만들어지는 방식이 또다시 재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안 보여주고 이야기를 한다’, ‘안 보여주고 공감을 이끌어낸다’가 처음부터 저의 목표였어요.
VR 매체가 가진 장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G: 아쉬운 점도 있죠. 여러 가지 기술적인 한계에 의해서 의도한 것이 100% 구현이 되지는 않습니다만 어느 매체나 그 매체가 가진 한계가 있는 거죠. VR은 유통과 배급의 한계가 있고 헤드셋을 얼굴에 대야 한다는 것에 대한 관객들의 거부감과 부담감도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미군 기지촌 여성 3부작 같은 경우엔 형식과 내용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게 처음부터 기획, 창작되었던 작품입니다. 예전에 김현 선생님께서 《전체에 대한 통찰》이라는 책에서 형식과 내용에 대한 논란을 한마디로 일축하는 말씀을 하시잖아요. ‘금반지에서 구멍과 금을 분리할 수는 없다’라고. 저의 기지촌 여성 3부작은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해요. 이게 VR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내용이 매체가 되고, 매체 자체가 내용이 되어버린 거라고 생각을 해서 그 면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이슈가 화제가 되고 많은 공감을 끌어내야 되고 문제의식이 되길 바라는데 VR이 아직은 그 정도 파급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니까 매체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작품이 베니스영화제에서도 상을 받게 되고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지 않은가 생각을 합니다.
G: 저도 배급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고민했습니다. 저는 정보 전달을 충실하게 하고, 관객을 교육 할 수 있는 다큐를 만드시는 분들을 굉장히 존경하고, 그런 작품들의 언어적인 명징성에 대한 굉장한 존중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시리즈를 계속 VR로 만드는 이유는 제가 구현하고 싶은 어떤 지점은 사실 언어 바깥의 감성의 지점이고, 그것을 근원적인 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 언어적으로 전달을 하고 교육을 하기보다는 그냥 관객들이 그 자리에 있으면서 감정적으로 동요되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VR이라는 시적이고 어떻게 보면 모호하고 감정의 영역에 분명히 속하는 그런 방식을 채택한거고요. 배급의 한계는 분명히 있죠.
그래도 제가 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동두천(Bloodless)>가 많이 소개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거의 한 80개 정도의 영화제를 돌았던 것 같아요. 영화관뿐 아니라 굉장히 많은 미술관이나 학교에서도 상영요청이 있었고, 상영과 함께 어떤 특별한 이벤트를 여는 경우도 많았어요. 네덜란드의 ‘아이 뮤지엄(Eye Film Museum)’ 같은 경우는 주한미군에 대한 문제를 다룬 영화들, 아카이브 영상들을 다 모아서 보여주고,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도 마련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에서 영화적으로 어떻게 재현해 왔을까를 이야기하는 세미나도 열었습니다.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같은 곳에서도 이야기가 되기도 했구요. 영화나 영상물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구나, 이게 어떻게든 파급이 되면 결국에는 많은 사람이 이걸 이야기할 방법이 있구나를 보게 되기도 해서 배급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처음보다는 마음이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소요산(Tearless)>은 감사하게도 부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가 되었습니다. 아까 여성의 몸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주시기도 했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그 문제에 대해 매우 충격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상적으로는 되게 미니멀 하잖아요. 폐허가 돼서 아무도 없는 공간을 그냥 찍은거에요. 그리고 실제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있거나 어떤 재현 장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일어났던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것들이 소름끼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을 보여주는 방식이 여기에 있던 피해 여성들의 몸을 보고있다는 느낌을 전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폐허가 돼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은 그런 공간이잖아요. 그 공간을 어떤 은유처럼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여기 있던 여성들의 몸이 사실 이 공간과 유사한거야. 우리가 저지른 일이 이곳과 유사한거야.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다 망가진 그런 곳을 보고 있는거야’ 라는 느낌이 확 드니까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이런 부분에서 되게 섬세하게 연출된 작품이구나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얘기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왜냐면 영화감독은 뭔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길 원하잖아요, 클로즈업을 하거나 씬을 구성해서 ‘이 지점에 다달아!’ 이렇게 얘기하기를 원하는데.
G: (웃음) 그렇죠, 음악도 넣고
그런 것들을 다 포기하셨잖아요. 이게 전달이 안될 수도 있는데. 이런 은유와 상징이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도 끝까지 이걸 밀어붙이시게 된 데는 어떤 확신이나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G: 재현 윤리의 문제에 대해 역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소요산(Tearless)>은 <동두천(Bloodless)>과는 또다른 재현의 윤리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지면서 만들었던 작품입니다. 물론 이걸 굉장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겠죠. 근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고 그냥 제가 2015~16년 경에 처음 거기를 갔을 때의 충격을 그대로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확신이 있었어요. 이곳에 오면 느낄 수 있다. 저도 그저 평범한 사람인데 이 건물 안에 들어가는 순간 느낄 수 있었거든요. 여기가 어떻게 사용된 공간인지 정확한 디테일은 몰라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누구나 느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내러티브가 있잖아요, 이 영화도. 결국 중요한 건 건물이 아니라 이 안에 갇혀 있었던 여성들이고, 그 여성들의 몸이고, 그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시간입니다. 시간성을 어떻게 부여하느냐를 가지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 시간성은 일과표에서 찾았어요. 제가 처음 갔을 때는 그 일과표가 벽에 붙어있었어요. 지금은 없는데, 7시 기상에서 뭐 몇 시 아침식사, 몇 시 치료, 몇 시 교육, 몇 시 운동 이렇게. 관리자들이 강요한 일과표가 손으로 쓴 글씨로 벽에 붙어있었고, 지금 많이 여러 가지로 훼손이 되었지만 그 일과의 흔적이 건물 안에 남아있고. 이 안에서 굉장히 많은 시간을 보낸 여성들이 무엇을 감내했는지가 이 하루의 일과표를 보면 분명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선정적으로 뭔가를 찍는다던가 보여준다는 생각은 없었고요, 장소를 소개하고 그 다음에 그 장소가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를 약간 암시하는 정도의 소품을 저희가 구비를 해서 거기에 시간성을 부여하게 된거죠.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사실은 저는 폐허를 여성들의 몸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여성의의 몸을 은유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저는 이 건물이 오랜 시간 동안 보존이 잘 되어서 사람들이 와서 볼 수 있는 어떤 기념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처음 이 공간에 갔었던 2015~16년과 지금의 상태는 너무나 달라요. 쓰레기가 가득 차있고, 너무 많이 훼손된 상태거든요. 저희가 이걸 어떻게 촬영을 하고 어떻게 접근을 할까를 가지고 미술팀과 함께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이 건물에 있었던 것이라면 어떤 훼손이라도 놔두고, 건물에 원래 있었던 쓰레기라면 그대로 놓아두자. 만약에 건물 밖에서 나중에 사람들이 가지고 들어온 쓰레기라면 그것은 치우자’라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기로 했습니다. ‘벽에 못을 박는다던가, 하다못해 테이프를 붙이는 것도 우리는 할 수 없다’라는 기조로 간 거죠. 벽에 굉장히 많은 낙서가 있었는데 CG로 지웠습니다. 저희는 이것을 복원한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했기 때문에 스텝들에게 창문 하나 건드리지 말라고 부탁을 했어요. 왜냐면 창문이 깨져 있는데 건드리면 넘어가서 나머지도 깨지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까치발로 살금살금 다니면서 촬영을 했습니다. 함께한 스텝들한테 고마운게, 제가 딱 한마디만 했거든요. ‘이 여성들의 몸이라고 생각을 하고 이 건물을 다뤄달라’고 말을 했어요. 그것들을 다 지켜주셔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해요.
우와, 이 벽이 CG로 지워진거군요.
G: (웃음) 그렇죠.
중간에 보면 낙서처럼 보이는 것이 하나 남아있죠. 그런 것이 인상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그 외에도 수많은 낙서나 이런 것들이 후에 남겨졌군요.
G: 네, 이게 낙서가 ‘이렇게 되었구나’ 정도의 느낌이면 놔두려고 했는데,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의 그래피티로 실제 공간들이 많이 훼손이 되어있어요. 그래서 이것을 지우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 저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영화에 몰입을 너무 심하게 방해하겠구나. 이 낙서들이 글자이다보니 관객들이 그것을 읽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그러면서 영화를 보는 시간이 많이 지나가더라고요. 그래서 그것들은 결국 CG로 제거를 했죠.
<동두천(Bloodless)>과 <소요산(Tearless)>을 볼 때 관객은 몸이 없이 유령처럼 그 공간에 있게 됩니다. 유령처럼 있는데 배우와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그러니까 이 작품이 관객을 알아보는 순간에 ‘내가 이 주제에 소환되었구나’ 하는 느낌을 확 받거든요. 그렇게 ‘획득된 자아’가 보는 것이 그 (피가 흐르는) 방바닥. 이 지점의 연출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지점이 아까 초반에 얘기한 심플한 컨셉을 가지고 있던 초기의 VR 작품들과는 격이 다른 위상을 확보하게 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여주지 않음으로 해서 획득된 미적인 가치 혹은 주제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초반에 얘기하실 때 ‘3부작의 마지막 편은 매우 비주얼 할 것이다’라고 얘기를 해주셔서, 이 기조가 어떤 스타일로 계속 유지되는 건지, 아니면 새로운 시도나 다른 지점으로 저희를 데려가실 건지가 궁금해요.
G: 짧게 말씀드리면 기조는 유지가 됩니다. 그 ‘비주얼하다’는 뜻이 굉장히 역설적이고 반어적입니다. 보여지지 않은 것을 상상하게 되어서 보는 거보다 강렬한 느낌을 받는 것이 <동두천(Bloodless)>이나 <소요산(Tearless)>인 거잖아요. <소요산(Tearless)>도 소품은 있는데 거기서 어떤 행위를 하는게 보여지지 않죠. 그런데 그 행위를 상상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마지막 세번째 작품도 그런 식의 비주얼인거죠. 보여지는게 없는게 오히려 더 비주얼하게 강렬하게 느껴지는. 다만 좀 더 적극적으로 조명이나 이런 걸 좀 활용할 생각이어서, 무언가를 보고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사실은 보여지지 않는 이상한 역설을 이야기 하고 싶어요.
왜냐면 아까 유령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동두천(Bloodless)>이나 <소요산(Tearless)>에서 맞닥뜨려지는 여자들의 존재도 사실은 유령같은 존재들이잖아요. 이 여성이 우리와 눈을 마주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면 그 여자와 합체가 되는 느낌을 받으면서 <동두천(Bloodless)>같은 경우에는, 2016년에 촬영한 그 거리가 아니라, 1992년에 그 여자가 무참하게 살해되었던 그 방으로 가게 되는, 말하자면 빙의를 경험하게 되는거고, <소요산(Tearless)>도 마찬가지로 그 여자가 저희를 볼 때 그때부터 그 여자의 소리를 듣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그 여자와 합체가 되어서 그 여자가 경험하는 걸 굉장히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되는 건데, 3부도 그 기조는 변함이 없을 것 같아요.
VR 제작환경이 카메라도 그렇고, 스티칭이나 후반작업도 그렇고 (기술적인) 변화가 되게 많잖아요. 아마 <동두천(Bloodless)>만드실 때랑 <소요산(Tearless)> 만드실 때도 큰 차이를 느끼셨을텐데, 물론 연출의 기조는 똑같지만, 그 다음 작업에는 이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연출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계신가요?
G: 네, 그렇게 이해를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왜냐면 <동두천(Bloodless)> 때만 해도 고프로(GoPro) 여섯대를 가지고 촬영을 했던 영화이다 보니까 화소라던가 화질의 문제가 너무나 심각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게 동선이 굉장히 중요했던 영화이기 때문에 화질이 조금 떨어져도 이해는 되었지만 저는 굉장히 답답했었죠. 그러다 <소요산(Tearless)>을 만들 때가 되니까 8K로 촬영이 가능하고 미세한 조정작업이 가능하고 제가 원하는 비주얼들을 만들어낼 수 있더라구요. 그런 기술적인 발전이 결국은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결과가 되었는데 3부에서는 그런 것들이 훨씬 더 가능해질 것 같고요. 기술 발전이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여지는 어떤 존재들의 느낌’을 훨씬 더 강렬하게 전달하는데 아주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결국 이 3부작을 보는 것이 VR 제작 기술의 발전 과정을 보는 것이기도 하겠네요.
G: 뭐 그렇게 되면은 감사하죠. (웃음) 저야 뭐 기술적인 부분을 훌륭하게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요.
<동두천(Bloodless)>이 나오고서 <소요산(Tearless)> 나올 때까지 기간이 기다리기가 좀 어려울 정도로 길었어요. 그러면 다음 작품은 또 이만큼 기다려야 되나요?
G: 이거보다는 조금 더 빨리 만들어져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건 솔직히 제작비의 문제가 가장 컸습니다. <동두천(Bloodless)>같은 경우에는 제작자들이 사비를 들여서 만들고 ‘벤타VR’에서 현물지원을 해주시고 후반작업을 도맡아서 해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미국에서 학교를 통해서 여러 가지 지원금을 받아서 정말 꾸역꾸역 기워가면서 만든 영화였습니다. 스티칭을 할 때 굉장히 힘들었는데, 이게 그림만 스티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도 스티칭이구나 할 정도로 정말 누덕누덕 만들어간 영화였어요. <소요산(Tearless)>은 그거보다는 편했지만 사실 제작비를 마련하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게 아쉽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근데 이게 어렵고 민감한 주제이고, 제가 기조로 생각하고 있는 미학적인 전략을 바꾸면 안되는 주제이고 그거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투자제안을 받기도 했고, 투자를 받게 되면 빨리 만들 수 있겠지만, 제가 세운 기조들이 흔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빈번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어려운 작업은 어렵게 하는게 맞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려운 일은 어렵게 풀어가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큼 어렵게 만든 작품이고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사실 이 사건이 벌어진 그 시점으로부터 생각을 하면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G: 맞습니다.
빨리 이야기가 마무리가 되는 것보다 ‘오랫동안 우리가 곱씹어야 되는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 관객들이 이 작품들을 잘 만나고, 필요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영화제는 사실 일주일이나 열흘 동안 개최되는 팝업 전시 같은 공간이고, VR 자체도 많은 관객들을 만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지요. 그래서 영화제 이후에 이 작품을 어떻게 보여주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이 인터뷰가 나갈 때 쯤엔 영화제가 끝났을 테니까, 부천영화제 비욘드 리얼리티 전시 이후에 <소요산(Tearless)>은 또 <동두천(Bloodless)>은 어디서 만날 수가 있을지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G: 일정이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소요산(Tearless)>은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조금 오래동안 기간을 잡아서 상영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동두천(Bloodless)>도 예전에 미술관에서 상영을 했었는데 기간이 너무 짧다보니까 굉장히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보통 영화와 달라서 몇 백명이 한번에 같이 볼 수 있는게 아니다 보니까 기간을 넉넉하게 잡고, 관객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만들고, 그런 식으로 오프라인 전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영화제에도 많이 초청받을 거 같구요.
<동두천(Bloodless)>은 지금 MIT Open Doc Lab에서 일 년간 무료로 온라인 상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나왔던 VR작품 중에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 10개를 선정해서 온라인 전시를 하는 거죠. 코로나 시대에는 그게 맞는 방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프라인 전시도 하지만, 온라인 전시도 같이 이루어지면 좋겠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한 플랫폼도 만들면 좋겠다고 미술관들하고 계속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동두천(Bloodless)>과 <소요산(Tearless)>은 카메라로 찍은 실사 영상이잖아요. 근데 실사 촬영으로 VR 작품을 만드는게 그렇게 쉬운 과정은 아니기 때문에 요즘에는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작업을 많이 합니다.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넘어가면서 획득되는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죠. 인터렉션이 자유롭고, 이미지를 스티칭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 세계의 이미지가 완벽하게 구현이 되잖아요. 그런 장점들을 활용한 다큐멘터리도 나오고, 재미있는 소재의 작품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감독님도 그런 작업에 대한 생각도 혹시 있으신가요? 실사 VR이 갖고 있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같은 형태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계획은 있으신지요?
G: 물론 있습니다. 제가 사실 애니메이션만 안해본 것 같아요. (웃음) 여러 가지 영화 매체와 장르를 잡식성으로 소화를 해왔는데, 애니메이션만 해보지 않았고, 저는 사실 실험애니메이션에 굉장히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제가 많이 보지 못한 VR 애니메이션들은 3D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작품들이 좀 많았는데 그것보다 약간 실험적인 방식으로 실사와 섞인 실험 애니메이션을 VR로 구축을 하면 이거야말로 사람들이 꿈에서 보는 것 같은 환상적인 경험을 굉장히 강렬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거든요. 왜냐면 애니메이션이던 실사이던 그런 것들은 저한테는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들은 아니고요, 중요한 건 몰입도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이것이 영화의 가치라고 생각하는데, 관객이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가, 관객이 얼마나 가깝게 공감할 수 있는가가 저의 최종 목적입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활용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중입니다.
많은 감독님들 혹은 창작자들이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좀 있긴 있어요. VR이라던가 AR이라던가 혹은 여러 가지들을 결합한 것들은, ‘난 기술은 잘 몰라서’라고 거부감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감독님 작업을 보면 기술에 대한 이해나 이런 것들이 우선이 아니라 실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느냐’ 이게 우선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G: 감사합니다. (웃음) 생각이 다들 다르겠지만, 형식과 내용, 즉 미디어와 그것이 구축하고 있는 주제가 딱 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미디어는 그냥 도구라고 생각해요. 미디어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VR 기술이 정말 처음 나왔을 때 많은 분들이 음란물을 만들거나 가학적인 영상을 만들기에 좋은 매체가 아니냐라는 우려를 굉장히 많이 하셨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 점을 역이용을 해서 오히려 <동두천(Bloodless)>과 같이 VR이 피해자에 공감을 하는데 최적화된 매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미디어는 중립적이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가치에 따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굳게 가지고 있습니다. 창작자로서 저의 신념이나 믿음인거죠. 실제로 그렇다 아니다를 논의하는 것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을 것 같고요. 미래가 정해져 있는게 아니잖아요. 저희가 옳다고 믿는 것을 실제로 해나가다 보면 결국 신념이 구현되어 가는, 그런 ‘의지미래’인거죠. <동두천(Bloodless)>을 만들고 나서 ‘VR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이 사회정의의 구현이나 사회변혁을 위한 매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인터뷰 질문을 받았을 때,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라고 언제나 대답을 했거든요. 다른 매체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안하고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소요산(Tearless)>는 정말로 사운드가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 작품을 만드실 때 사운드 연출은 어떻게 하셨는지, 또 사운드 감독님께 어떻게 디렉션을 주셨는지, 또 제작 과정에서 어떤 아이디어들이나 경험들이 있으셨는지를 꼭 듣고 싶었었습니다.
G: 이 영화는 내러티브를 사운드로 끌고 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소위 2D 영화를 만들 때 사용하는 ‘편집에 의한 샷플로우’라는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어디를 보아야할지,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낼 수가 없죠. 인서트도 없고, 클로즈업도 없고, 그런 것들을 저는 이제 사운드로 밖에 구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동두천(Bloodless)>에서 ‘발자국 소리’로 그런 연출 지점을 구현해 보았습니다. 이번에 <소요산(Tearless)>은 처음부터 사운드로 내러티브를 구축하려고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쓸 단계부터 <동두천(Bloodless)>은 피가 중심이고, <소요산(Tearless)>은 눈물이 중심이다. 이게 다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액체죠. 이것을 중심으로 했을 때 내러티브를 어떻게 만들어갈까. 사운드로 구축을 하자 라고 생각을 했고, 결국 물소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건물 안의 풍경과 전혀 맞지 않는 이상한 동굴에서 나오는 것 같은 물소리들이 처음부터 계속 들리고, 나중에는 그것이 굉장히 증폭돼서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들잖아요. 그게 시나리오 단계부터 다 있었던 내용이고요, 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사운드 감독님 하고 미팅을 했을 때 ‘여기의 물소리, 여기의 이상한 소리가 효과음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 영화에서는 대사이고 내용이다’ 라고 말씀을 드렸고, 이게 일반 극영화에서는, 심지어 VR영화에서도 생경한 개념이죠. 그런데 그거를 굉장히 잘 받아들여 주셨어요. 웨이브랩의 한명환 팀장님이 애를 써주셨는데, 거칠게 뼈대를 만들고 난 다음에 이 소리들을 잘 살리기 위한 이펙트들을 알게 모르게 밑에 굉장히 많이 넣어주셨어요. 어떤 우주에서나 들릴 수 있을 듯한 희한한 종류의 엠비언스 룸톤 같은 걸, 자세히 들어보면 그런 게 아주 자세히 음악처럼 깔려있는 씬들이 많이 있거든요. 관객의 감정을 증폭시킬 수 있도록 굉장히 애를 많이 쓰면서, 아주 섬세하게 작업을 해주셔서 전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운드 믹싱을 하는 중에 할 때 제가 또 잠깐 미국에 가야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운드 감독님이 원격으로 집에서 이어폰을 끼고 믹서에서 나오는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게 배려를 해주셨어요. 그 작업과정 자체가 너무 행복했어요. 그러니까 사운드 자체가 그냥 내러티브이고, 이 물소리와 이런 엠비언스가 저희는 그냥 대사인 거예요. 환경의 소리가 대사인거죠. 왜냐면 이 건물의 소리가 내용이니까요. 그것을 정말 잘 구현을 해주셨고, 나중에 기회 되면 스테레오 사운드만 따로 받아서 이어폰 끼고 들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럴 만큼 사운드의 구축이 단단하게 되어있고, 굉장히 아름답게 음악처럼 설계가 되어있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굉장히 작은 소리들이 있어요. 나뭇잎이 등장할 때는 나무들이 무성하게 안으로 들어와 있잖아요, 그거를 강조해주기 위해서 나뭇잎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도 넣었어요. 그 다음에 지저분한 장면에서는 파리 소리가 나오고 그러는데, 그런 게 원래부터 있었던 소리가 아니에요. 매우 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저희가 다 디자인을 해서 넣었던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또 분분할 수 있겠죠. 이게 다큐멘터리인데 왜 그런 소리를 디자인을 해서 일부러 넣었느냐고 얘기할 수 있죠. 그것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현실에 대한 재현’을 얼마나 진실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자리에 갔을 때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희한한 소리를 제가 마음대로 감정을 증폭시키기 위해서 넣었다면 조금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자리에 갔을 때 언제나, 제가 로케이션을 굉장히 여러 번 갔었죠,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 그때마다 들었던 소리인데 촬영할 때는 잘 잡히지 않았던 소리인 거죠. 그런 것들은 따로 작업해서 재현을 시켜준 거죠, 한마디로.
정말 여러 가지 메타포가 있는 것 같아요.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 우리의 지나간 역사거나 행위들이지만, 현재 보이지 않는 것. 그렇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것. 그리고 현재는 들리지 않지만 들어야 하는 것.
G: 말씀하신 그런 아이러니나 메타포나 그런 것들이 이 작품에 잘 맞는 미학적 전략이라고 생각을 하는 게, 이 미군 기지촌 여성이라는 주제 그리고 한국에 있는 주한미군이라는 존재, 기지촌이라는 존재, 주한미군 기지라는 지역적인 지형(topography) 그런 것 자체가 사실은 그래요. 이게 어떤 문장으로 치자면 한 괄호 안에 딱 들어가 있는 그런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굉장히 잘 사는 나라가 되었죠. 이제 사실 거의 선진국이나 진배 없습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존재는 대부분 잊고 살고 있고, 알고는 있지만 뭐 그렇게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딘가엔 있겠지, 여기는 뭐 많이 점령하고 있겠지. 알고는 있지만 사실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 사회의 가장 기저의 어떤 원동력으로 강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서 어마어마한 희생을 치르셔야 했던 여성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한테는 그분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죠. 그렇지만 많은 수의 여성분들이 피해를 입었고, 사회에 아직도 존재한단 말이죠. 그게 저는 굉장히 이상해요. 그 건물, 몽키 하우스가 지금도 있다는 것도 굉장히 이상하구요. 다음 작품을 위해서 이제 스카우팅을 하고 조사를 해보면 그런 기지촌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어요. 근데 저희는 그 존재를 모른다는 것이죠. 있으나 있지 않은 것. 보이나 보이지 않는 것. 이런 희한한 감각 안에 그 문제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런 미학적 전략이 적절하지 않았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네 맞습니다. 그 <소요산>에도 마지막 문구에 이 건물이 언제 문을 닫았는지…
G: 2004년.
네, 2004년에, 그 2004년이라는 숫자도 되게 생경하더라고요.
G: 네, 최근이잖아요. 그게 궁극적으로는 저희가 사는 현실인 거죠. 왜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같은 공간에서 살더라도 자신이 속한 계급에 따라 다른 시간과 시대를 살아 간다.’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소요산>도 그런 소외된 분들의 이야기거나, 주류 사회로 영입되지 못한,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그래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도 반지하나 옥탑방에 살아서 정말로 보이지 않게 되는 그런. 분명히 같은 동네 안에서 살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게 저는 상당히 무시무시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같은 문제이죠.
— Jay Kim, 2021년 7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