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유혹은 바람과 같아서 항상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가 언제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가슴속에 로맨틱하고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꿈을 묻고 산다. 그러다 일상의 삶이 초라하고 지리멸렬하게 느껴질 때 사람들은 사랑에 쉽게 빠진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늘 똑같은 결혼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불륜의 유혹에 쉽게 빠져 드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상대를 자기만의 소유로 삼으려는 순간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두번째 사랑>에서 두 남녀 지하(하정우 분)와 소피(베라 파미가 분)는 사랑 없는 섹스를 먼저 시작한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필요 없다. 하지만 만남이 계속되면서 이들은 서로에게 이끌리게 된다.
영화는 성공한 변호사인 한국인 남편 앤드류(데이빗 맥기니스 분)와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소피가 어떤 계기를 통해 남편을 닮은 지하에게 빠져들게 되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부부 사이의 섹스와 애인 사이의 섹스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어림 짐작하게 할 뿐이다.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던 두 남녀가 만나 섹스를 나누다가 육체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수많은 불륜영화의 단골 소재다. 하지만 <두번째 사랑>이 이들 영화와 차별되는 것은 여주인공의 능동성에 있다. 영화는 소피의 시선으로 옮겨지는 후반부에 진가를 발휘한다. 남편은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고 아이를 지우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소피는 아이를 지울 생각이 없다. 불륜의 파국을 맞고도 부부애의 복원을 주장하지 않는 이 영화의 쿨한 결말은 그래서 더 빛이 난다.
다큐멘터리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와 <그 집 앞>으로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김진아 감독은 첫 상업영화 <두번째 사랑>에서 시종일관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관객들을 수동적인 객석의 자리에서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인다. 불륜을 소재로 삼았지만 <두번째 사랑>은 상투적이지 않다. 여성의 욕망에 대한 대담한 묘사가 돋보이는 <두번째 사랑>은 일탈의 선로를 달리기 시작한 이들의 비틀린 관계를 통해 아직 시작되지 않은 ‘두번째 사랑’을 꿈꾸게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두번째 사랑>은 도발적인 소재 자체를 부각시키는 영화가 아니다. 김진아 감독은 소재가 주는 통속성에서 벗어나 보는 이의 일상과 감정까지 송두리째 휘젓는 ‘일탈의 사랑’을 펼쳐 보인다. 대사가 많지 않은 이 영화에서 김진아 감독은 계급과 인종, 또 불륜이라는 사회적 금기를 넘어서는 두 사람의 미묘한 마음을 카메라의 움직임만으로도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이 영화는 특히 연기와 음악이 훌륭하다. <용서받지 못한 자>, <시간>, <구미호가족> 등에 출연하며 신인답지 않은 색다른 행보를 보여온 하정우는 애인을 미국에 데려오기 위해 사랑을 판 지하의 심리를 맞춤복처럼 잘 소화해낸다. 백인여성과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그의 자상한 눈은 많은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부정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베라 파미가의 가녀린 몸매를 샅샅이 훑는 카메라의 관능적인 움직임은 극중 소피의 욕망 어린 시선을 대신한다. 영화 <피아노> 음악으로 유명한 영국의 대표적인 음악가 마이클 니만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선율은 사랑에 빠져들어가는 두 연인의 섬세한 감정을 감각적으로 전해준다.
—김규한 (2007년 5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