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개봉하는 한·미 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의 김진아 감독(33·사진)은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만나는 순간 선입견은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첫 인상은 부드러웠고 말투 역시 그랬다.
“남성의 법, 권위가 아니라 여성의 자비, 연민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겨요. ‘여성의 남성화’가 아니라 ‘남성의 여성화’가 이뤄져야죠.”
김감독은 국내보다 해외에 뿌리를 박고 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칼아츠에서 영화를 공부한 뒤 하버드대에서 3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사이 만든 ‘그 집 앞’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 등이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베라 파미가, 하정우 주연의 한·미 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은 그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두번째 사랑’의 촬영 현장 분위기도 그의 스타일답게 시종 화기애애했다. ‘감독의 카리스마’ 따위는 찾기 힘들었다. 고성 한 번 없는 게 스태프와 배우가 마치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영화 ‘피아노’의 음악으로 유명한 마이클 니만이 참여한 것도 김감독의 배경과 이런 부드러운 섭외 덕택이었다. “그런 유명한 양반이 음악을 맡아주겠어?”라며 회의하던 사람들도 놀랐다. 영화 음악의 장르는 물론 현대음악에서도 거장급으로 통하는 니만은 국내 영화 음악가들보다도 싼 개런티를 받고 참여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다지 부드럽지 않다. 통속적인 불륜 드라마의 외양을 갖고 있지만 결정적인 곳에서 균열을 보인다. 성공한 미국의 한인과 결혼한 백인 여성 소피가 주인공. 보수적인 기독교도 남편과 그 가족의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이를 가지려 하지만 남편은 수태 능력이 없다. 이에 소피는 남편과 닮은 한인 불법 체류자 지하에게 돈을 지불하고 관계를 맺는다. 다분히 건조한 둘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르게 발전한다.
스토리에 대해 찬반이 엇갈릴 것 같다는 지적에 “싫어하는 이유도 소중하다. 모두가 좋아하거나 모두 반대하는 영화는 싫다. 내 영화가 ‘뭔가 긁는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다”고 지론을 피력했다.
벌써 그에겐 다음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할리우드의 유력 에이전시인 CAA와 감독 계약을 맺고, 차기작을 메이저 스튜디오인 패러마운트에서 작업한다. 내년 말 공개될 차기작은 전적으로 할리우드 자본, 배우에 의해 촬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