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감독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일단 남성감독이 이런 시나리오를 쓰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베라 파미가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만약 남자감독이 <두번째 사랑>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면,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이것 하겠다고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나리오를 섰는지 물어보기는 했겠지만 말이에요.” 남성감독이 이런 시나리오를 쓰지는 않았겠지만, 만약에 받아서 만들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외면풍경에 충실한 멜로영화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같은 경우에는 소피의 내면풍경을 담아내는 데 주력한 것에 반해서요.
소피와 앤드류의 초반 베드신 장면은 다소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 2세 앤드류에게 금발의 8등신 미녀 소피는 전시용 와이프의 의미가 없지 않아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 둘의 사랑이 진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결혼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소피가 앤드류한테 끌렸던 이유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성취욕구 때문이었을 거예요. 반면, 소피의 경우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안다 하더라도 추구하기를 두려워했어요.
그런 앤드류가 아기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모든 기반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두번째 사랑>의 첫 장면이 앤드류 아버지 장례식으로 시작하잖아요. 그때 앤드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서 남성상의 타격을 스스로 받아요. 사실 그토록 원했던 아이를 임종 전에 보여드리지 못한 죄책감이 가장 컸을 것 같아요.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그런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하는 정사 신이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성적인 욕망을 그리는 것보다는 앤드류가 표현해야 절박함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앤드류는 장례식 장면에서도 굉장히 차갑고 정서적으로 메말라 있는 사람처럼 보여지잖아요. 소피는 그런 앤드류의 슬픔을 이해하기 때문에 현재 마음을 표현해주기를 바라지만 둘 사이의 열정과 애정은 이미 식어 버린 상태에요. 앤드류한테는 어느 정도 폭력성이 가미된 ‘소리없는 절규’와 같은 정사신이었기 때문에 관객들한테는 건조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극중 두 남자 지하, 앤드류 중에 한 명을 선택하라면?
당연히 지하죠.(웃음) 제가 가지고 있는 사랑관이나 애정관이나 인생관이 시나리오 속에 묻어날 수 밖에 없잖아요. 제가 <두번째 사랑>에서 결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였거든요. 모든 삶의 원동력은 몸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고요. 극중에서 지하는 소피의 삶을 변화시키는 메신저 역할을 사실은 하는 거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지하를 선택할 수 밖에 없겠죠.
배우 하정우는 어땠나요?
정말 정우 씨는 어떤 칭찬을 해도 모자라지 않는 배우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정우 씨를 너무나 믿었기 때문에 사사건건 개입을 하지 않았어요. 배우 하정우가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소외감을 통해 지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을 표현해 낼 수 있도록 자극은 했지만 말이에요. 하정우가 지하라는 캐릭터로 되어주기를 바랐을 뿐이지 촬영장에서 꼬치꼬치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라고 주문을 하지는 않았어요. 저의 믿음이 오히려 정우 씨한테는 플러스 요인이 된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신뢰 안에서 정우 씨는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대사가 많은 캐릭터가 아니잖아요. 그나마 몇 개 안 되는 대사는 영어대사로 해야 하고.(웃음) 그런 것들을 너무 완벽하게 소화를 해준 것 같아요. 베라 파미가가 하정우에 대한 연기칭찬을 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지하 역을 한 정우씨의 연기에 리액션을 했을 뿐이다.” 베라 파미가라는 배우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하정우 씨는 현장에서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분출했어요.
미국 촬영현장은 어땠나요?
미국 촬영현장 같은 경우에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행이 빨라요. 노조 때문에 하루 12시간 이상을 촬영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25회 차 만에 촬영을 마쳤어요. 하루에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고 해서 컷 수를 줄일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웃음) 하루에 평균 34컷까지 소화해 내야 했기 때문에 촬영장에서 시나리오를 바꾼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요.
결말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결말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게 사실이에요. 불륜영화의 가장 큰 맹점을 하나 꼽는다면 결말을 짓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거에요. 불륜영화는 어떻게 놓고보면 자기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일종의 성장영화로 볼 수 있거든요. 두 남녀가 사랑에 빠져서 파국을 맞게 되는 과정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 다음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같아요. <언페이스 풀> 같은 경우도 어중간하게 열린 결말로 끝내버리잖아요. 불륜영화가 보여주는 결말은 크게 나누면 두 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아요. 여자가 파국을 맞던가, 아니면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집으로 다시 기어들어가서 남편과 대충 맞추어가면서 사는 비참한 결말. 그런데 저는 둘 다 용납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극중 소피라는 여자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소피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점에서 행복하다는 것을 그것을 관객이 느껴주기를 바랬어요. 소피의 아기는 바람을 피워서 낳은 아기 때문에 다른 어머니하고는 다르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이 여자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두 번째 아기를 임신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사진 속 지하의 여자친구는 누구인가요?
그 친구는 윤주희 씨라고요. 싸이더스HQ에 소속된 배우라고 알고 있어요. 처음부터 연기가 필요한 역은 아니었지만, 존재감이 있어야 하는 역이었기 때문에 여러 여배우의 사진을 받았어요. 극중에서 설명되지 않은 지하의 과거를 그 사진 하나로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에 마스크가 굉장히 중요했고요. 또 소피가 그 사진을 봤을 때 지금 이 사람이 이런 비참한 삶을 살고 있지만 한 때는 행복한 삶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소도구였기 때문에 사진 선정에 있어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었죠.
바뀐 영화 제목은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요. 일단 한국관객들을 위해서는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영어권에서 <네버 포에버>라는 제목은 큰 울림이 있는 제목이지만, 한국에서는 설명하기도 어렵고 “무슨 뜻이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애매모호한 뉘앙스를 가진 제목인 게 사실이잖아요. 원제가 직역이 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의미를 가진 제목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했어요. 두번째 사랑으로 자기 자신의 행복을 찾은 소피의 마음을 <두번째 사랑>이라는 한국식 제목이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두번째 사랑>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두번째 사랑>은 한미합작이고 베라 파마기라는 할리우드 배우가 나왔고 하정우라는 멋진 배우가 영어대사를 소화해냈고 뉴욕에서 촬영을 했고 이런 여러가지 외부적인 이슈거리가 많잖아요. 이런 것들 보다 제가 봐주셨으면 하는 것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정서적인 울림이에요.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에게 마음을 준 경험이 있잖아요. 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을 하잖아요. 그것이 짝사랑이건 쌍방향의 사랑이건. 그런 것을 한번이라도 느껴본 관객 여러분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아요. 그냥 마음을 열어두시고 주인공들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편한 마음으로 보아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