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눈과 파란 눈의 사랑을 찍다

김진아의 한국과 미국 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은 얌전한 제목과 달리 백인 중산층 여자와 한국인 불법체류자 남자의 위험한 사랑을 다룬다. 
 
하정우와 베라 파미가가 출연하는 이 뉴욕판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는 설정의 파격뿐만 아니라 인물의 눈썹 움직임까지 포착하는 카메라의 돌진이 인상적이다. 이 과감한 스타일로 김진아는 한국의 극장가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상업영화를 선보인다.김진아는 하버드에서 한국문화와 영화를 가르치는 젊은 대학교수이자 영화감독이다. 지금까지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와 <그 집 앞>을 연출한 이 사람은 마주 앉은 이들에게 자기 에너지를 망설이지 않고 드러낸다. 겉으로 재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자기 홍보에도 주저가 없으며 당당하게 자기 자랑도 한다. 조금 질리는 구석이 있기도 한데, 2001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독한 여자인지를 알게 된다. 

엄마처럼 살기 싫어 미국 유학을 결행한 이후 자기 생활의 내밀한 부분을 일기 쓰듯이 찍은 이 비디오물의 노골성과 파격성은 보는 이를 질리게 했다. 157분 동안 거식증과 폭식의 유혹을 오가는 자신의 몸을 집요하게 기록한 이 영상일기는 보는 사람마저 탈진하게 만든다. 동시에 이 비디오물은 과연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자기파괴와 유폐의 이미지들이 가득한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것처럼 수려하게 집 안 사물을 카메라로 포착한다. 그때 ‘자기 연민보다는 나르시시즘을 택하겠다’던 김진아는 장편 데뷔작 <그 집 앞>을 2003년에 완성했으나 부산국제영화제에 잠깐 공개된 것을 빼고는 세인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여성의 자기 정체 찾기라는 익숙한 소재를 다룬 이 영화는 숱한 예술영화들의 진열대에서 불행하게도 자기 생명을 얻지 못했다. 그런 뒤에 그녀는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 주최 예술영화지원작 공모에 신작 시나리오를 출품했고 당선됐다. 
 
“그 소식을 듣고 뉴욕에서 환호성을 올렸다. 그때까지 과연 새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종자돈이 생기니까 비로소 새 영화를 찍게 된다는 실감이 났다.” 한국과 미국의 합작 형태로 계획된 김진아의 신작은 하정우, 베라 파미가 주연으로 지난해 폭염이 한창이던 뉴욕에서 25회차로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을 거쳐 선댄스영화제에 공개된 후 마침내 한국 극장가에 걸리게 됐다. 김진아로선 처음 상업영화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셈이다. 이 영화가 <두번째 사랑>이다.

시사를 끝내고 충무로 근처 식당에서 만난 김진아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그녀는 포커페이스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활짝 웃는 표정과 불안한 한숨 소리가 교차하면서 시시각각으로 얼굴표정이 바뀐다. “이건 상업영화잖아요. 어떤 이들은 감독이 영화 만들면 끝 아니냐고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흥행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건 당연지사 아닐까요?” 비평적 명예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얼굴에 좌절이 깔린다. “벌써 위로하는 건 아닌가요? 블록버스터들이 많긴 하지만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얼마나 알려질지 기대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리고는 계속 근심, 한탄, 비관을 쏟아내면서 거꾸로 이 영화가 흥행할 수도 있다는 말을 상대에게 듣고 싶은 속내를 드러냈다. 

하정우가 홍보에 열심이지만 여주인공 역을 맡은 베라 파미가도 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그녀 자신이 한국에 일찍 오지 못한 것에 대해 울면서 속상함을 토로했다고, 신작을 체코에서 찍고 있는데 6월 말에는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그때까지 <두번째 사랑>이 극장에 걸려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의 속사포를 쏘아댔다.

뉴욕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
솔직히 자기 홍보에 전력하는 김진아의 그런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진아는 적극적으로 그런 욕심을 늘 드러내는 유형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난 척 한다고 오해도 받는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친구 만들기에 능동적으로 나서는 그녀의 성품은 이번 영화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마이클 니먼이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것도 김진아의 대시하는 성품 덕분이었다. 한 번 저녁식사를 하고 호감을 나눈 것이 전부인 그와의 인연을 밑천으로 김진아는 파격적으로 싼 개런티에 그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주변에선 설마 되겠느냐고 했지만 김진아가 보낸 메일에 금방 마이클 니먼은 긍정적인 답신을 보냈다. 시나리오를 받고 나선 시간별로 자신의 소감을 적은 메일을 보냈고 마침내 영화음악을 수락한 후에도 조심스럽게 개런티가 많지 않다고 양해를 구한 김진아에게 “그건 내 문제이지 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렇게 화통하게 스탭으로 참여한 마이클 니먼이 작곡한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김진아가 퇴짜를 놓았을 때 감독들과 언쟁을 벌이기로 유명한 이 깐깐한 장인도 꽤 놀랐을 것이다. 김진아의 요구에 맞춰 수정한 음악작업을 끝내고 그는 김진아의 남편이자 이 영화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어바인 대학의 김경현 교수에게 적잖게 놀라고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선댄스영화제에 <두번째 사랑>이 출품됐을 때 그들은 같은 숙소에 머물며 나이 차이를 넘어 친구처럼 놀고 지냈다. 이런 일화를 통해 실력 있는 사람이면 누구와도 어울려 친구로 놀 수 있다고 대드는 유형의 적극적인 성품을 지닌 김진아의 면면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사랑>에서 인상적인 여주인공 소피를 연기한 베라 파미가는 우리에게 <디파티드>로 알려진 여배우다. “베라 파미가를 섭외하려 했을 무렵, 그녀는 메인 스트림 영화에서 떠오르는 존재였다. 모두 파미가를 이 영화에 캐스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고 김진아는 말했다. 프리프로덕션 스탭 대다수가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시나리오를 파미가에게 보낸 김진아는 곧 직접 만나자는 전갈을 받았다. 파미가를 만났을 때 대화는 캐스팅 수락 여부가 아니라 여주인공 소피에 대한 공감을 나누는 쪽으로 흘렀다. 

흥미롭게도 베라 파미가는 <두번째 사랑>의 소피와 유사한 인생 내력을 갖고 있었다. 파미가는 프랑스 명문가의 남편과 별 탈 없는 결혼생활을 누리다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로커 출신의 남자와 새 살림을 꾸렸다. 전 남편은 모든 것을 잊을 테니 돌아오라고 말했지만 파미가는 돌아가지 않은 채 새 남자와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전 남편과는 지금도 친구처럼 지내면서 파미가는 영화촬영이 없을 때면 뉴욕 인근의 농장에서 오리 떼를 몰며 지낸다. 그녀 자신의 개인적인 이력과 맞물려 파미가는 <두번째 사랑>의 소피에게 강렬하게 동화됐다. “베라 파미가와는 아무런 소통의 문제가 없었다. 그녀가 나보다 더 여주인공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울고 웃으며 촬영기간 동안 친구가 됐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파미가가 보여주는 연기는 감독 김진아의 입장에서 보면 신의 은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유복한 한국인 사업가 남편과 사는 주부 소피를 연기하는 그녀는 수태능력이 약해 아이를 갖지 못해 괴로워하는 남편의 고뇌를 덜어주고자 뉴욕에 불법체류하는 한국 남자 김지하와 계약을 맺고 임신을 시도한다. 싸늘하게 이어지는 이들의 육체관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희미한 사랑의 단계로 나아가고 마침내는 격렬한 애정으로 휘몰아칠 때 소피의 안락하지만 무미건조한 중산층 행복의 허상도 산산조각난다. 
한 여자의 자기 정체 찾기라는 주제는 여기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다뤄지지만 점프 컷과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일관한 스타일 속에서 포착되는 베라 파미가의 얼굴 표정, 손짓, 벌거벗은 가슴과 등, 세세한 주름 하나까지 한 여자의 마음을 송두리째 들여다보는 듯한 감당 못 할 압도감을 준다. 망원렌즈로 당겨놓고 들어오는, 다른 영화에 비해 1인치 더 치고 들어오는 난폭한 카메라의 존재를 당당하게 받아내는 강력한 기운이 배어나서 베라 파미가라는 여배우의 얼굴 하나만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만감이 생겨난다. 
흔히 열연을 한다고 했을 때의 그 배타적인 나르시시즘의 기운이 전혀 의식되지 않는 가운데 천 개의 표정을 지닌 여배우의 실존적 불안과 열망이 스크린 공기 전체를 잠식하는 것이다. 

베라 파미가의 매력을 결과적으로 뒷받침해준 이 거칠고 과감한 스타일은 <두번째 사랑>의 매력을 지탱하는 것이지만 뉴욕 현장에서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유럽영화에선 곧잘 볼 수 있지만 뉴욕 인디영화계에서는 금기에 가까운 거친 생략적 편집과 들고 찍기 촬영으로 짜인 김진아의 콘티는 스탭들의 반발을 샀다. 촬영 첫날부터 조감독, 라인 프로듀서를 비롯한 주요 스탭들은 이대로는 영화가 제대로 완성되지 않는다고 김진아의 남편이자 프로듀서로 현장에 있는 김경현 교수에게 끊임없이 어필했다. 노조에 가입된 스탭들을 고용해 하루 12시간 근무로 25회차 촬영으로 마무리된 <두번째 사랑>의 현장은 10분이라도 지체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시간과의 싸움에 대한 강박과 뉴욕의 여름 폭염과 스탭들의 보이지 않는 거부감 속에서 엄청난 긴장으로 치러졌다. 

“한국과는 달리 뉴욕에서 영화를 찍을 때 감독은 현장의 모든 스탭들과 소통해야 한다. 그는 한시도 자리에 앉아 있을 틈이 없다. 모든 파트와 관련해 바로바로 연출자로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김진아의 현장 지휘 모습을 보고 보통 강단을 지닌 연출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이 영화의 제작사인 나우 필름의 이준동 대표는 사석에서 말했다. 

자기 앞의 생
어떤 사연을 거쳐 영화가 만들어졌든 간에 결국 평가를 위해 남는 것은 영화의 완성도뿐이다. 앞서 말한 대로 비상한 화면 사이즈 연출 감각을 보여주는 <두번째 사랑>에는 단순한 플롯에 심은 세밀한 디테일을 보는 재미로 가득 차 있다. 지하와 소피가 돼지우리 같은 지하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관계를 맺을 때 소피는 자신의 속옷을 곱게 개어 비닐봉지에 담는다. 자신의 몸을 제외한 어떤 것에도 외간 남자의 흔적이 남는 것을 꺼리는 이 백인 여자에게 지하 역시 유쾌한 기분일 리가 없다. 관계를 맺으면서 지하는 자신에게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무슨 눈이 이렇게 파래?” 그들은 당연히 서로 소통하지 못한다. 그들이 소통하는 것은 각자 간직한 상처를 서로 드러내어 생채기를 내는 일련의 폭력을 통해서다. 그 과정이 내밀하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게 표현되는데도 숨 막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역시 연출과 연기 덕분이다. 여자의 정체를 슬쩍 파고드는 남자의 질문에 “담요를 새로 사야겠어요”라는 일상적인 말로 여자가 둘러칠 때, 그 평범한 말의 오감 사이에 끼어드는 눈빛의 마주침과 외면과 정적과 닿을 듯 스쳐지나가는 상처의 공명은 문자로 언어화될 수 없는 시각적 서술의 어떤 경지에 이른다. 

뉴욕에서 불법체류자로 일하면서 자신보다 상류층인 백인 여자에게 씨내리 역할을 하는 한국 남자가 상대에게 말을 거는 방법은 공격하는 것뿐이다. 섹스라는 관계의 외피에서 백인 여자 소피는 남자의 정액을 받는 그 순간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자신을 밀봉하려 든다. 그들이 차이나타운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설전을 벌일 때 우아하게 퇴장하려는 그녀에게 지극한 모욕을 전해준 남자는 비참하게 달아난 여자가 차이나타운 골목 어딘가에서 마구 울고 있는 것을 볼 때 비로소 그녀도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걸 안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나에 대해 모르면서”라고 말하며 우는 소피 역의 베라 파미가의 연기는 남자의 연민을 사는 그런 지점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오랜 고독과 상실감으로 온몸의 신경세포가 막혀 있는 자의 절해고도의 심정을 드러낸다. 
 
이런 막다른 골목에 처한 자들의 동병상련을 묘사하는 김진아의 연출은 세련되면서도 내밀하다. 그들이 비로소 마음을 서로 약간 열었을 때 섹스 장면 묘사를 보면, 육체적인 것에서 마음을 담아내는 수준의 연출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탄복할 사례가 될 만하다. 허름한 아파트의 삐걱거리는 침대에서 서로 몸이 함부로 닿을까 저어하면서 서서히 몸을 열고 망설이면서 빠져드는 육체와 마음의 합일상태에 이르는 것은 남녀관계의 작은 기적이자 동시에 파국이다. 그들은 이후 백인 중산층 여자와 한국인 불법체류자라는 남녀 사이의, 인종 사이의, 계급 사이의 매우 위험한 경계를 넘는다. 

상투성과 겨루는 상업영화의 숙명 속에서 <두번째 사랑>은 1인치 더 들어가는 클로즈업의 생생함으로 증명하듯 개인의 내면을 파헤치는 것으로 생명을 얻는다. 경건한 가족모임 파티에 불쑥 끼어드는 불온한 연애의 판타지를 대수롭지 않게 처리하는 영화 종반의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점프컷은 경계를 넘나드는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표현도구다. 거듭 점프하면서 무의식의 열망의 단계를 모방하려는 듯한 영화의 호흡은 허다한 대화 장면들에 끼어드는 침묵과 정지의 순간을 효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이 일탈의 연대기에 섬세한 배려의 시선을 입힌다. 우리는 희생자가 될지도 모를 이 위험한 연애의 실행자들인 주인공들에게 무작정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망설임과 두려움까지 받아들임으로써 적극적인 공범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결말은 명쾌하게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일방적인 행복이나 희망이라는 것도 없고 다만 살아낸다는 것의 약동하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소피가 잔잔히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아들과 함께 놀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든 것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둔 채 카메라는 소피의 모습을 지극히 바라볼 뿐이다. 클로즈업을 버텨내는 기운을 타고난 배우 베라 파미가는 여기서도 관객에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을 걸고 있다. 거기서 관객의 상념은 더 뻗어갈 수 있을 것이다. 김진아의 연출은 거기까지만 안내한다. 

영화 속의 다른 대목에서 바깥 유리창을 통해 샤워를 하는 소피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샤워를 하다 말고 문득 소피는 겨드랑이를 쳐들어 자기 몸의 냄새를 맡는다. 끊임없이 주변을 배려해야 한다는 강박을 보이는 정숙한 현모양처이지만 불안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소피는 영화 말미에 이르러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앞에 솔직해지는 그런 여자로 바뀌어가는 것 같다. 한참동안 자신에게 집중하다가 아참, 당신들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묻는 당당함이 이 영화의 후반부에 묘사되는 소피의 캐릭터에게서 풍겨나는 것이다.

그건 결국 이 영화의 감독 김진아의 또 다른 자아가 스며 있는 캐릭터의 반영이기도 할 것이다. <두번째 사랑>은 상처받은 영혼들의 결합이라는 보편적인 위반의 러브스토리를 계급과 인종을 뛰어넘는 플롯에 녹여 정해진 틀에 갇히지 않는 분방한 스타일로 치고 들어간 한 여성 감독의 성공적인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미국사회에서 백인 여자와 한국 남자의 육체적 관계를 드러내고 묘사한 이 러브스토리를 수용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시각에서 중산층 도덕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모럴을 찾는 여성 주인공을 용서하지 못할 남성 관객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두번째 사랑>은 거꾸로 꽤 용감한 영화이자 오래 준비한 자의 손맛도 있는 이미지의 정찬 코스가 될 것이다.
김영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