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 감독 "백인女ㆍ동양男에 대한 전복"

한미 합작영화 '두 번째 사랑'의 드라마는 어찌 보면 전형적이다. 완벽한 남편을 두고 있는 한 여자가 아이를 갖기 위해 가진 것 없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 그러나 외피를 벗어나 세 인물의 성장 배경과 캐릭터, 인종 구성을 따져보면 참으로 파격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 영화를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 소개하며 미국 주류영화계의 관심까지 붙든 김진아(34) 감독은 서울대 서양화과 92학번. 대학 졸업 후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칼아트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고 하버드대에서 3년 동안 강의를 했다. 그가 대학 4학년 때부터 쓴(?) 영상 일기를 모은 '비디오 일기'가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상영되며 주목받았고, 칼아트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단편 '빈 집'이 독일 오버하우젠 영화제 등에 출품돼 시선을 끌기도 했다.

21일 국내에 개봉될 장편 데뷔작 '두 번째 사랑'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성공한 한인 부류에 속하지만 여전히 이방인인 그가 미국 주류사회 일면, 이민자들의 삶의 편린, 성별과 인종과 자본의 계급 서열 등을 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이야기의 원형은 몇 개 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걸 비틀 뿐이죠. 이창동 감독님의 '오아시스'도 결국은 원수 집안의 남녀가 사랑에 빠진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전형적인 멜로입니다. 다만 그 원형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문제겠죠. 전 정공법을 택하고 싶었어요. 남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공격적으로 도전해 다른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를 살펴보자. 

'디파티드'에 출연했던 베라 파미가가 연기한 소피는 겉으로 보면 완벽한 조건에서 살고 있다. 한인 이민가의 2세지만 백인도 꿈꿀 수 없을 정도로 부와 명예를 거머쥔 남편이 주는 조건이다. 그러나 그는 성공한 아시아계 이민자가 화룡정점으로 선택한 '백인 여자'다. 그는 백인이고, 예쁘다는 외적 조건은 뒤떨어지지 않지만 극중 표현처럼 '무식한 집안'에서 자란 여자다.

한국인 두 남자의 캐릭터를 들여다보면 더욱 미묘하며 미국, 아니 서양에서 동양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암묵적으로 담겨 있다.

"미국에서, 특히 주류사회를 알 수 있는 하버드대에서 지내며 동양 남자에 대한 미국인의 시선을 알 수 있었어요. 서양인에게 동양 남자는 성적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차이나타운 등에서 일하는 동양 남자들을 보면 어느 계층 못지않은 성적인 존재인데도 서양인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거죠. 마치 최근 한국에서 아시아 이주노동자를 보는 시선이랄까요. 그런데 백인 여자 소피를 성공의 트로피처럼 안은 성공한 한인 남자 앤드루는 정자 능력이 떨어져 성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죠. 이에 반해 지하는 서양인들이 바라보는 전형적인 동양 남자지만 결국 백인 여자를 성적으로 눈뜨게 합니다."

그는 설명을 하며 '전복'과 '뒤집기'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전복에 대한 김 감독의 의지는 소피의 변화에서도 포착된다.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시선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의존과 모성의 대상인 어머니와 성적 대상인 창녀 아닐까요? 그런데 소피는 임신을 한 순간 오히려 성에 눈을 뜨며 창녀처럼 굽니다. 지하와의 섹스를 갈망하죠. 임신해서 오히려 성을 찾아가는 것 역시 전복이라고 봅니다."

김 감독이 이처럼 미국에서 살면서 마주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표현하는 방식은 멜로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강의하며 1950년대 할리우드 멜로영화와 1960년대 한국의 멜로영화를 집중해 다시 볼 기회를 가졌고, 마침내 '멜로는 위대한 장르'라고 생각했단다.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제 주제의식은 여성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되더군요. '여성의 욕망은 무엇일까' '여성이 욕망을 추구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데 여타 장르와 달리 멜로는 여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장르니까요."

그래서 영화는 마침내 소피가 "이 아이는 내 아이"라고 소리치며 남자는 보이지 않은 채 아들과 뱃속의 두 번째 아이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지향한다.

"남자에 의해서가 아닌, 소피가 자기 삶을 찾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굳이 소피의 남자를 관객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는 게 그의 의중.

그는 최근 할리우드의 유력 에이전시인 CAA와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됐다. 감독, 배우, 스태프 등이 총망라돼 있는 이 회사는 영화의 총괄적인 기획을 담당한다. 주류 영화계로 발을 들여놓은 셈. 또 파라마운트사와 계약해 작업할 예정이다.

상업적 접근을 하는 데 대해 김 감독은 "영화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전세계 대중과 호흡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리안 감독을 언급했다.

"리안 감독은 자국에서 인정받은 후 미국 할리우드 시스템에 들어왔죠. 뭔가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분의 작품을 보면 어느 장르에서든 '네가 내 가슴에 대해 뭘 알아?'라는 대사가 들어가요. 인간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표현하는 말이죠. 그걸 보며 느꼈어요. 자기 마음대로 장르를 휘두르면서, 상업 코드를 이용하면서 결국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저 역시 장르의 힘에 기대고 상업적으로 많은 관객과 주파수를 맞추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싶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너무 주제넘게 말하는 것 같네요."

기획의 힘과 작가 정신이 상업적 파워를 갖고 이상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에 대한 그의 소망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지켜볼 만하다.

Source: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