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 감독(35·사진)은 유럽인과 미국인에게 비춰지는 한국 남성의 이미지는 섹시함과 거리가 멀다고 짚는다. 딱딱함이라고 규정한다. “아시아 남자들에게서 성적 매력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아시아 남자들은 섹시하기보다는 완벽한 의사, 변호사 등 공부벌레 이미지”라는 것이다.
김 감독은 이처럼 왜곡된 아시아 남자의 이미지를 뒤엎고 싶었다.
새 영화 ‘두 번째 사랑’(2007)에서 자신의 바람대로 했다. 하정우(30)가 열연한 한국인 미국 불법체류자 ‘지하’는 힘겨운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돈을 받고 성관계까지 하는 비참한 인물이다. 하지만 ‘소피’가 빠져들 만큼 남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긴다.
영화에서 베라 파미가(35)가 연기한 ‘소피’는 성공한 아시아계 미국인 변호사 앤드루와 결혼,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남편 쪽의 문제로 아기가 없다. 흔들리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한국인 이민자 지하를 찾아간다. 돈을 내고 그와 성관계, 임신하려 든다. 서로의 필요에 의한 목적 있는 거래였다. 그러나 소피와 지하가 사랑에 빠지면서 거래는 깨진다.
3일 만에 완성한 시나리오다. 시나리오를 쓰고 보니 완전히 한국적이지는 않은, 그렇다고 완전히 미국적이지도 않은 내용이었다.
김 감독은 미국 칼아츠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최근까지 하버드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맡았다. 한국의 1960년대 영화들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고 있다.
외신과 인터뷰에서 “한국영화에서 1960년대는 황금기”라고 말문을 연 김 감독은 “그 시절 영화들을 오늘날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잘 만들어졌고 또 얼마나 급진적인지 놀랐다”고 말했다. 이미 그 시대에 여자들의 욕망을 영화의 주제로 다뤘다는 점이 파격이라는 설명이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영화 속 아내들은 결국 가부장적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비극적 종말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감독들이 영화에서 여성들의 성적, 감정적 욕구를 내세웠다는 사실이 김 감독에게는 흥미로웠다.
여성들의 욕망은 김 감독의 영화에서도 항상 중요한 주제다. 대학원 1학년 때인 1995년부터 작업한 ‘진아 김의 비디오 다이어리’(2002)는 여성의 몸과 욕망의 인식, 성 정체성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신선하고 섬세한 영상으로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김 감독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03년 영화 ‘인비저블 라이트’에서는 두 여자의 삶과 욕망을 다뤘다. 남자 ‘준’과 결혼한 여자, 준과 바람을 피우는 여자다.
한국과 미국이 공동제작한 ‘두 번째 사랑’은 2007년 6월 한국 개봉 당시 미국여성과 한국남성의 사랑이라는 흔치 않은 주제로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1일 미국에서 ‘네버 포에버’라는 타이틀로 개봉했다. 뉴욕타임스 신문이 올해 꼭 봐야 할 영화로 손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