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의 비디오 일기」베를린영화제 초청

김진아 감독의 「김진아의 비디오일기」가 2월 6일 개막하는 제5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부문(Forum of New Cinema)에 초청됐다.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는 어머니와 같은 삶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여자가 자폐적인 생활 속에서 거식증을 앓다 점차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감독이 자신의 미국 유학생활 모습을 담은 셀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지난해 밴쿠버 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다. 

김진아 감독은 현재 장편 극영화 데뷔작인 이선진ㆍ정찬 주연 영화 「그 집 앞」(제작 청년필름)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이다.

 

“여성의 욕망, 터놓고 말해보죠”

독립영화, 여성영화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그 집 앞’이 최근 촬영을 마쳤다. ‘그 집 앞’은 음식 거식증과 섹스 폭식증을 앓는 두 여자의 몸에 대한 솔직하고 대담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 김진아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고 연출도 했다.

김감독은 “실험성을 추구하면서 정서적 내용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려 했다”는 말로 작품의 분위기를 소개했다. “실험성은 창작인이 갖는 기본 욕망이자 관객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형식상의 새로움으로 관객의 심미안을 조금이라도 확장시키고 정서적 울림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 여자는 사랑없는 섹스후 음식에 대한 거식증을 앓으면서 집안에 갇혀 있어요. 또다른 여자는 갑작스런 임신후 섹스에 대한 폭식증을 느끼며 거리를 배회하고요. 이들을 통해 여자들의 외로움과 욕망을 가감없이 묘사하려고 합니다”

김감독이 이 작품을 떠올린 건 2000년 가을. 언제 어디에서든 메모하는 습관을 갖고 있는 그는 이 즈음 메모상의 이미지들이 일관성을 지녔다는 걸 발견했다. 이듬해 여름 이 이미지들을 나열, 걸러내면서 정리를 하자 그곳에는 두 여자가 살고 있었다. 이후 다른 듯하지만 닮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듬고 살을 붙이면서 중편소설로 엮었고 이어 시나리오로 완성했다.

“얼핏 두 여자가 영화상의 도식적인 인물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시나리오를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는데 모두들 자신의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몇몇 사람들은 친구 사이여서 한 이야기를 영화상에다 하면 어떡하느냐고 불편해 하기도 했죠”

시나리오가 영화진흥위원회 장편영화 제작지원작에 선정되면서 지난해 여름 미국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여주인공은 슈퍼엘리트 모델 출신인 이선진과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최윤선, 이들 사이의 남자는 정찬이 맡았다.

촬영은 부산·오버하우젠(독일)·밴쿠버(캐나다)영화제 등에서 상영된 김감독의 전작 ‘빈집’ ‘다채로워지는 아침’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를 통해 알게 된 피터 그레이(미국장면)와 베니토 스트란지오(한국장면)가 맡았다. 그레이는 ‘세친구’와 ‘H’의 촬영감독으로 한국과 인연이 깊다.

“더위와 추위, 시간과의 싸움이었어요. 악전고투를 하면서 두 여자의 겉과 안을 살아있는 인물의 그것으로 상징화하는 데 주력했어요. 원형(실제)과 멀어지면 스크린에 박제된 인물에 지나지 않고 그렇게 되면 인물은 물론 그들의 언행과 심리가 대중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이런 점을 감안, 영화 전체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어요. 인물에 대한 친밀감과 여성의 내밀한 자의식과 감수성을 담아내려면 기존의 필름과는 다른 영상언어를 구현해야 했거든요”

김감독은 서울대 서양화과 출신. 재학중 연극을 했고, 설치·환경미술과 퍼포먼스에 관심을 가지면서 비디오 아트와 인연을 맺었다. 미국 칼아트(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영화과 대학원에서 비디오 아트를 전공하면서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6년여 DV작업을 통해 여성의 ‘몸’과 ‘욕망’에 주목해온 그는 이제 장편 데뷔작 ‘그 집 앞’으로 보다 많은 관객과의 소통에 나선다. 이 영화는 오는 5월중 개봉될 예정이다.

배장수기자 cam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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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로 치유해가는 거식증의 기록

나를 위한 혹독한 퍼포먼스

변기에 머리를 쳐박고 먹은 것을 다 게워내면서 틈틈이 자신이 잘 찍히도록 카메라의 높이를 조절하는 사람을 일찌기 다큐에서 본 적이 있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동물의 날간을 으깨 먹으면서 그런 자신의 입에 딱 맞게 카메라를 셋팅해 놓는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집의 틈새들을 미친 듯 만지고 다닌다거나 주문을 외우며 팔을 허공에 흔드는 비일상적인 몸짓들은 또 무엇인가. 카메라에 담을 생각이 없었다면 그녀는 과연 엄마의 웨딩드레스를 입거나 할머니의 보자기들을 빨랫줄에 너는 상징적 행위를 했을까.

셀프 다큐인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라면 금기시하는 작위적인 장면들로 가득하다. ‘저기 어딘가 카메라가 있고, 그 카메라가 피사체로서의 김진아를 찍는다’, 라는 느낌을 주는 장면은 극히 몇 장면뿐, 김진아 감독은 아주 많이 언제나 카메라를 의식하며 카메라 앞에서 일종의 퍼포먼스를 한다. 삶은, 이 작품에서 퍼포먼스와 곧잘 혼동된다. 그것은 그녀가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삶을 퍼포먼스화하며, 동시에 삶을 표현하는 별도의 퍼포먼스를 카메라 앞에서 실행하기 때문이다. <김진아의 비디오일기>가 다큐로서 독특한 것은 바로 그런, 일상과 퍼포먼스의 모호한 경계에서 기인한다.

“어떤 날은 몇분만 찍은 적도 있지만 많이 외롭고 힘든 날은 거의 하루 종일 켜놓기도 했어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작가가 스물셋 어느 여름날 미국 유학을 가서 자폐적인 생활 속에 거식증을 앓고 8미리 비디오카메라로 비디오일기를 찍으며 그것을 서서히 극복해나가는 과정, 그것이 이 157분짜리 셀프카메라 다큐멘터리가 담고 있는 내용이다. 보는 이를 거의 배려하지 않는 일기 같은 이 작품은, 스스로를 때린다거나, 동물의 날간을 으깨 먹는다거나, 불안에 휩싸여 창가에 앉아 운다거나, 너무 굶다 너무 먹어서 앙상한 팔다리에 배만 불룩이 나온 스스로의 나신을 거울 앞에 비춘다거나, 하는 한 개인으로서 “남들에게 보여주기 창피한 것들”이 많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녀의 일기가 담고 있는 건 그것만이 아니다. 그런 장면들을 건조하게 담아내는 카메라와 그녀 자신의 각별하면서도 기이한 관계가, 어쩌면 거식증보다 더 큰 이 작품의 소재다.

말상대이자 감시자인 카메라

<김진아의 비디오일기>에는 이상하리만큼 그녀 자신만 나온다. 미국 유학 중 찍은 것이지만 학교의 친구들이나 하다못해 가게 주인들도 나오지 않는다. 공간도 그녀 자신의 방뿐. 단 한번 학교 현관이 등장하지만, 오랫동안 그곳의 텅빈 시멘트 바닥을 비출 뿐이다. “일기는 혼자 있을 때 쓰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카메라를 꺼낼 수 없었어요. 실제로 혼자이기도 했구요.”

거식증이 처음 기미를 보인 건 대학 4학년 무렵. 졸업을 생각하면서 뭔가 ‘여자로서’ 다른 것을 의식하게 된 그녀는 자꾸만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외할머니로부터 엄마가 그랬듯, 그녀도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행을 결심했다. <김진아의 비디오일기>의 첫 부분 ‘집을 떠나며’는 미국으로 가져가는 짐을 꾸리는 날의 이야기다. 예고도 없이 몇 년간 발길을 끊었던 외할머니가 그녀의 집에 찾아온다. 그리고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가지 말고 엄마랑 여기 있어라. 너는 몸이 약하다.” 어머니는 할머니를 쫓아내고, 집을 떠나 김진아는 심한 거식증으로 빠져든다.

“고양이 밥을 주는 게 유일한 사회활동이었던” 때, 김진아 감독은 당시 “내 모습이 너무 추하다는 생각에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만 있었다.” ‘특별해야 한다. 특별하지 못하다면 특별해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강한 자의식 속에 그녀는 마신 물 한 모금의 양도 기록하는 병적인 다이어트를 했고, 그렇게 타자의 시선에 마비된 김진아가 발견한 유일한 친구가 카메라였다.

비디오카메라를 모니터에 연결하고 빨간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카메라는 가장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말 상대인 한편 야단치고 감시하는 가상의 타자였다. 그 모순적인 카메라와의 관계가 병세와 더불어 깊어진 어느 날, 김진아는 폭식을 한 직후 카메라를 설치하고 거울 앞에서 옷을 벗었다. 깡마른 팔다리에 배만 불룩 나온 몸을 스스로에게 공개하며, 그녀는 비로소 오랜 병에서 한발짝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터질 듯이 부른 내 배에 들어 있는 게 음식이 아니라 아기라면? 엄마, 나를 가졌을 때 행복했나요?” 불룩한 배가 꼭 임산부의 배처럼 보여진 순간, 그녀는 자신의 ‘배’와 극적인 화해를 했다. “나는 음식을 거부한 게 아니라 엄마를 거부한 거였어요. 원래 엄마는 아기에게 밥의 의미죠. 밥을 먹지 않음으로써 난 무의식적으로 엄마를 거부했던 거예요.” 그녀는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나가지 못했던 학교에 그동안 찍은 비디오테이프들을 들고 가 지도교수에게 보여주며 상담을 했다. “거식증은 사회적인 병이다. 왜 이걸로 작업을 하지 않느냐”는 교수의 말에 김진아는 어느 하루의 촬영분을 편집해 <빈 집>이라는 제목을 붙인 자신의 일기를 1999년 서울여성영화제,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피아영화제 등을 통해 남들의 시선에 공개했다. 처음이었다.

엄마와 화해하고 밥을 받아들이다

로스엔젤레스 칼 아츠에서 비디오아트를 공부한 김진아는, 페미니즘 비디오아티스트다. 나중에서야 비디오일기를 찍는 페미니스트 비디오 작가들이 꽤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처음 카메라 앞에 설 때 그녀는 이것을 작품화할 생각도,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었다. 그녀는 오직 자기만을 위해 6년간 비디오일기를 찍었고 나중에 그 중에서 한 테마로 담을 수 있는 2년8개월 가량을 157분으로 편집해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를 만들었다. ‘집을 떠나며’, ‘출발! 새아침’, ‘엄마의 웨딩드레스’, ‘벌거벗은 식욕’, ‘거울’, ‘엄마의 노래’, ‘하얀 빨래’, 시기별 7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는 이 작품에서 ‘거식증’과 맞물린 또하나의 축은 ‘엄마와의 관계’다.

“나 하나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보듬어 일으켜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 이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 그런데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고등어를 다듬을 수 있었을까.” 복잡한 가족사 속에서 엄마에 대한 애증을 키워온 김진아 감독은 어느날 엄마에 대한 기억을 들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학길 짐에 묻어온 박스 안에서 오래된 엄마의 영어회화테이프 하나를 발견한다. 테잎에서는 영어회화가 나오다가 갑자기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흐르면서 젊은 엄마의 음성이 들린다. “지나, 맘마 먹어야지, 맘마. 지나 배꼽 나온 거 봐라, 지나가 울어가지고 배꼽이 다 나왔어.” 아무렇지 않은 아기 보는 엄마의 이 말소리와 자장가는 마침 ‘다 큰’ 김진아의 배를 비추는 화면과 더불어 먹먹한 감동을 부른다. 그것은 스물다섯 당시 그녀의 상황에 아릿하게 들어맞는, 오래전에 잊은 엄마의 말들이었다.

외할머니의 누더기 옷들을 양지바른 곳에 널고, 김진아는 비로소 157분짜리 작품에서 처음으로 바깥에 나선다. 방바닥에 격자무늬 그림자로만 어른거리던 햇빛이 무한정 널려 있는 집 밖. “살아 있는 한 희망이 있다. 살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 내 살 내 삶”이라는 아포리즘과 함께,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는 힘겹게 도달한 그 집 밖에서 끝을 맺는다.

6년간 비디오일기를 찍으며 거식증을 완전히 떨쳐낸 김진아 감독은 지금도 비디오일기를 계속 찍고 있다. 예전과는 달리 자기 자신이 아닌 외할머니와 어머니, 자신에 이르는 모계 가족사가 일기의 주제이며, 그녀 자신 훨씬 생활인이 되어 있기에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작업하는 중이다. 그러는 한편 그녀는 장편극영화 <그집앞>도 준비하고 있다. 페미니스트로서 그녀가 하고픈 이야기는 뭘까. 바로 ‘배’이야기다. 여성의 욕망이라면 흔히 성욕부터 접근을 하지만,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식욕. 모성을 수용하는 위장과 모태로서의 자궁, 그리고 한 인간이 타자와 연결되었던 유일한 흔적인 배꼽이 공존하는 배를 통해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하는, 남근 중심이 아닌 배꼽 중심의 담론이 그녀의 테마다.

비디오일기를 찍으며 김진아는 자기만의 의식을 치러냈다. 그녀 스스로 말하듯 이 작품은 “온갖 제례들의 집합”이고 동시에 아주 기이한 방식의 일상기록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다큐 같지 않은 다큐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는, 카메라와 한 인간의 깊은 소통을 기록해냄으로써, 일상을 연출없이 그대로 담아내는 게 다큐의 본성이라는 통념을 정면으로 깨고, 또 역설적으로 실천한다.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는 전주국제영화제 비디오다이어리 섹션에서 상영된다. 글 최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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